아들과 함께 연길행 비행기에 올랐다.
청도에서 잠깐 내렸다가 연길에 닿으니
시원한 바람이 코 끝에 상큼하다.
상해 택시 기본요금은 11원인데 연길은 5원
공항 오가는 요금도 5분의 일 가격으로
지인의 집에 들려 인사 하고는
다음날 백두산 행을 위해 같이 갈 사람들 묵는 숙소로 옮겼다.
동이 트길래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5시에 출발해서 중간에 옥수수로 아침을 떼우고
12시에 장백산 입구에 도착했다.
팀은 장백폭포를 지나 걸어서 천지로 향했고
나와 아들은 힘든 코스를 피해
짚차를 타고 정상 바로 전에 내려 전망대로 갔다.
이름모를 갖가지 야생화가 예쁘게 피어있고
천지는 마음까지 물들일만큼 파랗고 아름다웠다.
산에는 아직 얼음이 남아있고
점퍼를 걸쳐야할만큼 쌀쌀했다.
정상에서 사진 두 장을 찍었는데
합성사진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할만큼 아름다웠다.
아들은 내가 힘들까봐 옆에서 지켜주고
장백폭포 지나며 온천물에 몸 씻고 오라고
짐을 지키며 기다려 주었다.
다음날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애국선열들이 다닌 학교와
기념관을 보고 일송정에 올라 해란강 줄기와
용정 시내를 둘러 보며 "선구자"를 불렀다.
아들은 '선구자'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지만
연대에도 윤동주 시비가 있으니 관심을 보였다.
두만강 줄기를 따라 도문 시내로 들어갔는데
강줄기 건너편 이북 땅은 중국 환경과는 달랐다.
산 정상까지 밭을 일구었는데
그것이 산사태의 원인이니 빈곤의 악순환이었다.
북한 남양시의 기차역에는 김일성 사진이 걸려있었고
밭에는 농민들이 손을 부지런히 옮기고 있었다.
연길로 돌아와 반가운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푸짐한 인심을 가득 안고 상해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들은 상해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을 주는대로 받아
짐꾼이 되었다고 투덜거렸지만
그 사랑은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걸
울 아들은 언제나 알까??